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너드 번스타인 (문단 편집) == 음악 성향 == [youtube(gQctkKJMgM0, width=480, height=360)] [[말러 교향곡 제2번 C단조 부활]]의 마지막 부분.(관련 배경지식이 없어도 멋진 지휘에 감동을 받을것이다.) [youtube(uT8YsDI2yu4, width=480, height=360)] [[하이든]] 교향곡 88번 4악장. 눈빛과 얼굴 표정으로만 지휘하는 모습[* 앙코르 연주여서, 조금 장난기 있는 면이 있긴하나 무책임하게 노는것은 절대 아니다. 저렇게 눈빛과 얼굴 표정만으로도 오케스트라를 장악할 수 있을정도로 오케스트라를 조련했으며 오케스트라와 혼연일체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당연히 거장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사람이 어설프게 흉내 내면 연주의 세심함이 떨어짐과 동시에 욕을 먹을 것이다. 또한 저렇게 거장 수준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눈빛을 통한 신호 전달과 감정 표현은 지휘자가 되기 위한 '''기본 소양'''이다.] 그야말로 [[바로크]] 시대 음악인들도 저리가라 할 정도로 활동 분야가 광범위한 인물이었다. 클래식 지휘자로 많이 유명하지만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히트시킨 작곡가이자 교향곡 세 곡을 비롯한 '진지한 계통의' 음악까지 써낸 작곡가라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 게다가 피아노 실력도 보통 이상이어서, [[모차르트]]나 [[베토벤]], [[모리스 라벨|라벨]],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에서 독주와 지휘를 모두 맡아 1인 2역으로 연주하거나 [[로베르트 슈만|슈만]]의 피아노 5중주 같은 실내악곡에서 피아노 파트를 맡은 녹음들도 있다[* 다만 이건 [[앙드레 프레빈]]과도 겹치는데, 프레빈도 피아노 실력이 솔리스트 못지 않아서 피아노 중주, 피아노 협주곡 등에서 독주와 지휘를 모두 맡았고, 한때 영화음악을 작곡하기도 하면서 관현악곡과 바이올린 협주곡 등을 작곡했다.] 이런 녹음 중에서도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에서는 신나게 피아노 치면서 지휘하는 것을 들을 수도 있다. 거기에 수많은 대학 강연 기록과 저술 활동, 인권 운동 참여 등의 활동상까지 보면 한 인간이 이 정도로 많은 일을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다. 지금도 음악계에서 이 사람에 필적할 활동상을 보여주는 인물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진정한 의미의 [[초인]]. 다만 뮤지컬 외의 작품들 같은 경우에는 '너무 극장 음악삘이 강하다'는 이유로 종종 비판받기도 했고, '미사' 처럼 사회 문제를 곡에 진지하게 반영했을 때도 정치/종교적인 논쟁이 상당히 격렬하게 오갔다. 지휘 스타일은 높이 평가해줬던 스승들인 라이너나 쿠세비츠키와는 거의 극점에 있다고 해도 될 정도인데, 다소 정신 사나울 정도로 지휘봉과 손을 놀려대는 데다가 지휘대에서 발을 구르거나 점프까지 할 정도로 심히 과장된 지휘 폼을 보여주었다. 이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청중들의 환호를 이끌기에 충분했지만, 너무 경박하고 지나치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이들도 많았다. 아무튼 번스타인의 지휘 동작은 '레니 댄스(Lenny Dance)'라는 칭호로 지금도 회자될 정도.[* 어느 클래식 사이트에서는 동영상으로 gif 짤방을 만들기도 했는데, 무서운 속도로 잽을 연타하거나 PT 6번을 무한반복하는 번본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신이 작곡가였던 만큼 현대음악에 대한 관심도 상당했는데, 특히 모국인 미국 작곡가들의 작품을 매우 정력적으로 소개해 세계 무대로 진출시킨 것이 큰 업적으로 일컬어진다. 작곡된 후 거의 50년이 지나도록 [[아오안]]인 상태였던 [[찰스 아이브스]]의 교향곡 제2번을 초연해 성공시킨 인물도 번스타인이었고, 이외에 [[에런 코플런드]]나 [[루 해리슨]], [[새뮤얼 바버]], 윌리엄 슈먼, 데이비드 델 트레디치, 네드 로렘 등의 따끈따끈한 신작도 적극적으로 공연하고 녹음했다. 클래식 외적으로는, [[비틀즈]]에 대해 엄청나게 호의적이였다고.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에 있는 곡인 She's Leaving Home을 '''웬만한 클래식보다 뛰어나다'''라고 표현했고, [[Yesterday]]에 대해서도 극찬했다.[* 사실 Yesterday에 대해서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도 코드 전개가 뛰어나다며 칭찬한 바 있긴 하다.] 활동 초기에는 재즈 피아니스트로도 활동했는데, 심지어 당대 본좌 재즈 피아니스트였던 [[테디 윌슨]]에게 피아노 레슨을(!!) 해줄 정도였다. 1956년에는 CBS 라디오에서 재즈 관련 강의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했고, [[루이 암스트롱]]과 [[데이브 브루벡]] 같은 재즈 명사들과 협연한 녹음도 있다. 다만 [[조지 거슈윈]]에 대해서는 다소 비판적으로 평했는데, 대표작인 '랩소디 인 블루' 의 경우에도 '전체적인 통일감도 없고 이것저것 엉성하게 짜맞춘 메들리' 라고 깠을 정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랩소디 인 블루'인 것이고, 그러한 '랩소디 인 블루'를 즐겨듣고 좋아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무대에서는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 1인 2역을 해서 자주 공연해 곡의 유명세에 이바지하기도 했다. 콘서트에서 주로 활동했기 때문에 [[오페라]] 영역에서는 상대적으로 공연 기록이나 음반이 적은 편이지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주세페 베르디|베르디]]의 '팔스타프', 베토벤의 '피델리오', [[조르주 비제|비제]]의 '카르멘', [[리하르트 바그너|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푸치니]]의 '라 보엠' 같은 굵직한 작품들의 음반과 영상물도 좋은 평을 받고 있다. 또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일부, 특히 발퀴레와 신들의 황혼을 콘서트 오페라 형식으로 뉴욕 필, 빈 필과 공연하기도 했다. 물론 만년에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콘서트 형식으로 공연해 녹음한 자신의 [[오페레타]] '캉디드' 도 지금까지 결정반으로 손꼽힌다. 경력 초기였던 1950년대에 전설적인 [[소프라노]] 가수 [[마리아 칼라스]]와 공연한 [[루이지 케루비니|케루비니]]의 '메데아' 와[* 마리아 칼라스가 양성애자였던 번스타인이 자신과 친한 무대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이전 버전에서는 자신과 바람을 피던 남자 무용수라고 나와 있었는데 사실이 아닐 것이다.)에게 작업이라도 걸까봐 번스타인의 양성애 성향을 단원들에게 까발리고 굉장히 모질게 굴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마리아 칼라스가 이미 유부녀였다는 점.] [[빈첸초 벨리니|벨리니]]의 '몽유병의 여인' 실황도 음질은 안좋지만 역사적 기록물로 평가되며, 사후 [[EMI]]를 통해 정발판 CD가 나온 바 있다. 그리고 최근에 리마스터링 음반이 나왔다!!! 유대인이었던 만큼 말러를 비롯한 유대계 작곡가나 음악인에 대한 애정도 각별했는데, 2차대전 종전 직후에 유럽에 가서 강제수용소에 억류되어 있었던 음악인들과 공연하기도 했고 [[이스라엘]] 건국 후 갓 창단된 팔레스타인 교향악단(현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자주 지휘했다. 하지만 [[선민사상]] 급의 정통 유대주의자는 아니었다. [[팔레스타인]]에 유태인 거주구역을 늘려가는 것을 결사반대했으며, 팔레스타인 출신인 [[에드워드 사이드]](항목 참고하면 알겠지만 이 사람도 음악적으로 재능이 꽤 있었다)와 만나 토론하면서 아주 친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뜻이 맞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되려 유대인 수꼴들에게 배신자처럼 취급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베를린 장벽 붕괴 기념 공연을 지휘하거나 국제사면위원회/유네스코 지원 공연을 숱하게 개최한 것으로 볼 때 넓은 의미의 자유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로 여겨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